일상에서 "요즘 잘 지내?" 라는 질문은 흔하지만 그 속에는 묘한 전제가 담겨 있다.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정해져 있고, 그 기준에 맞는지 묻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며 어느새 정체 모를 기준 앞에서 삶의 상태를 평가하고 있다.

1. 잘 살고 있다는 말이 만들어지는 방식
잘 산다는 기준은 개인이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합의에 가깝다. 안정적인 직업, 일정 수준의 소득, 끊임없는 성장 같은 요소들이 암묵적인 기준으로 작동한다. 이 기준은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주변의 반응과 비교를 통해 자연스럽게 학습된다.
문제는 이 기준이 시대와 환경, 개인의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틀을 기준 삼아 스스로를 평가한다. 잘 살고 있다는 말은 축하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점검표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삶은 현재의 만족보다 외부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상태인지 여부로 판단되기 쉽다.
2. 기준에 맞추는 삶이 주는 불편함
외부 기준에 맞춰 살다 보면 방향은 분명해진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비교적 명확하다. 하지만 그 방향이 자신의 가치와 어긋날 경우 성취감보다 피로가 먼저 쌓인다. 잘 살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공허함이 생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기준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어느 한 지점을 통과하면 더 높은 기준이 등장한다. 이 구조에서는 잘 살고 있다는 상태가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만족은 잠깐이고 다음 단계로의 이동이 당연한 것처럼 요구된다.
결국 기준을 따르는 삶은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끊임없는 비교와 자기 검열을 동반한다.
3. 나만의 기준을 다시 묻는 이유
‘잘 살고 있다’는 질문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는 기준을 재정의할 시점일 수 있다. 이 기준은 반드시 거창할 필요가 없다. 하루의 리듬이 안정적인지 감정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지 스스로 선택한 시간을 살고 있는지 같은 요소들도 충분히 기준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준의 출처다. 타인의 시선에서 나온 기준인지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기준인지를 구분하는 일이다. 이 구분이 이루어지면 평가의 방향도 달라진다.
잘 살고 있다는 말은 하나의 문장일 뿐 정답은 아니다. 그 기준을 누가 정했는지 묻는 순간부터 삶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해석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해석은 각자 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