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하면 언젠가는 잘하게 된다는 말을 오래 믿어왔다. 재능이 없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면 결국 따라잡을 수 있다는 말은 노력하는 사람에게 가장 안전한 위로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문장이 나를 지탱해주기보다는 설명되지 않는 의문을 남기기 시작했다. 정말 꾸준함은 언제나 재능을 이길 수 있는 걸까.
1. 계속해도 넘지 못하는 벽을 마주했을 때
처음에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남들보다 속도가 느려도, 이해가 늦어도, 결국 따라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더 시간을 들였고, 남들이 쉬는 시간에도 계속 붙잡고 있었다. 분명 꾸준히 하고 있었고, 그만두지 않았다는 사실만큼은 자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어떤 간극은 줄어들지 않았다.
같은 시점에 시작했는데 이미 훨씬 앞서 나간 사람들을 보게 됐다. 그들은 특별히 더 오래 붙잡고 있지 않아 보였고, 오히려 여유 있어 보였다. 나는 매번 한계를 느끼며 버티고 있었는데, 누군가는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다시 꾸준함을 떠올렸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은 점점 설득력을 잃어갔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꾸준함이 부족한 게 아니라, 애초에 방향이나 성질이 다른 건 아닐까. 아무리 같은 시간을 써도 어떤 일은 더 빨리 몸에 붙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려워졌다. 그 순간 꾸준함이 재능을 이긴다는 말은 희망이 아니라 비교의 기준처럼 느껴졌다.
2. 꾸준함이라는 말이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릴 때
꾸준함을 강조하는 말에는 은근한 전제가 숨어 있다. 잘되지 않는 이유는 아직 충분히 계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전제다. 이 말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모든 결과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린다. 환경이나 조건, 성향의 차이는 자연스럽게 지워지고, 남는 건 계속하지 못한 사람의 의지 문제뿐이다.
일상에서도 비슷했다.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더 엄격해졌다.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아직 각오가 부족한 건 아닐까 자책했고, 힘들다는 감정마저 핑계처럼 느껴졌다. 꾸준함을 미덕으로 삼을수록, 멈추는 선택은 점점 더 어렵고 죄책감이 큰 일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꾸준함이 재능을 이긴다는 말은 노력하는 사람을 보호하기보다는, 끝까지 버티지 못한 사람을 쉽게 설명해버리는 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 말 아래에서는 각자의 속도와 한계가 존중받기 어렵다. 계속하지 못한 이유를 묻기보다는, 왜 포기했는지를 단순하게 판단해버리기 때문이다.
3. 꾸준함을 이기려 하지 않기로 했다
이후로는 꾸준함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겨야 할 무기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무엇이든 오래 하면 잘하게 된다는 믿음 대신, 어떤 일은 나에게 맞고 어떤 일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쪽이 훨씬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꾸준함이 의미 있으려면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감당 가능한 피로도인지, 삶을 무너뜨리지 않는 선인지, 그리고 계속하면서 나 자신을 미워하게 되지는 않는지 살펴봐야 했다. 예전에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잘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라는 걸 인정하게 됐다.
꾸준함이 재능을 이긴다는 말을 더 이상 그대로 믿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꾸준함이 쓸모없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만능 공식은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나에게 맞지 않는 싸움에서 꾸준히 버티는 대신, 나에게 맞는 방향으로 힘을 나누어 쓰는 것이 훨씬 오래 갈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그 순간부터 꾸준함은 증명해야 할 태도가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