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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없이 사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느낀 날

by ggooltip 2025. 12. 25.

늘 무엇인가를 향해 가고 있어야 안심이 되던 시기가 있었다. 다음 단계, 다음 계획, 다음 성과가 정해져 있지 않으면 뒤처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무 목표도 없는 시간이 오히려 나를 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목표 없이 사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느낀 날
목표 없이 사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느낀 날

1. 목표가 사라졌을 때 처음으로 느낀 불안

목표 없이 지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불편한 일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 무엇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하루가 흐릿하게 느껴졌다. 해야 할 일은 여전히 있었지만, 그것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묶여 있지 않다는 사실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목표는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하루를 평가하는 기준이기도 했다는 걸 그때 알게 됐다.

목표가 있을 때는 하루가 끝날 때 스스로를 쉽게 판단할 수 있었다. 계획한 만큼 했는지, 조금이라도 가까워졌는지로 하루의 가치를 매겼다. 하지만 목표가 사라지자 그런 기준도 함께 사라졌다. 잘 살고 있는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 같은 날들이 이어지자, 마음 한쪽에서 조급함이 올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몸은 조금씩 편안해지고 있었다. 해야 한다는 압박이 줄어들자 잠들기 전 생각이 덜 복잡해졌고, 하루를 망쳤다는 자책도 줄어들었다. 불안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존재하는 묘한 시간이 이어졌다.

 

2. 아무 방향도 없을 때 비로소 보이던 것들

목표가 없다는 건 방향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니 자연스럽게 속도도 느려졌다. 처음에는 그 느림이 불안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안에서 보이는 것들이 생겼다. 그동안 목표에 가려 잘 보지 못했던 감정들이었다.

예전에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된다고만 생각했지, 왜 지치는지까지는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다. 하지만 목표 없는 시간 속에서는 이유 없는 피로, 설명되지 않는 무기력 같은 것들이 그대로 드러났다. 애써 밀어두지 않으니, 그 감정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조금씩 알게 됐다.

일상도 달라 보였다. 특별한 의미 없이 하던 산책이나 커피 한 잔의 시간이 이전보다 선명하게 느껴졌다. 무엇을 위해 이 시간을 쓰고 있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 오히려 그 순간 자체에 집중하게 됐다. 목표가 있을 때는 모든 시간이 수단처럼 느껴졌다면, 목표가 없을 때는 시간이 그 자체로 존재했다.

 

3. 다시 목표를 생각하게 만든 시간

아이러니하게도 목표 없이 지낸 시간은 목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세웠던 목표들이 정말 내가 원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멈추지 않기 위해 붙잡고 있던 장치였는지 돌아보게 됐다. 늘 다음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그 방향이 나에게 맞는지 묻는 일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목표가 없다고 해서 삶이 멈추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속도가 느려지고, 판단이 늦어질 뿐이었다. 그 느린 시간 속에서 나는 내가 어떤 리듬으로 살아야 덜 무너지는 사람인지 조금씩 알아갔다. 모든 시기에 명확한 목표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받아들이게 됐다. 때로는 방향을 정하지 않는 시간이 있어야, 다음 방향이 억지스럽지 않게 정해진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제는 목표 없이 사는 시간을 실패나 공백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를 숨기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를 회복시키는 시간에 가깝다. 다시 목표를 세우게 되더라도, 그 목표가 전부는 아니라는 걸 기억하게 됐다. 목표가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목표가 없어도 무너지지 않는 상태. 그 균형을 배우게 해준 시간이 바로 목표 없이 살았던 그 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