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나는 늘 열심히 살고 있는지 스스로를 점검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바쁘게 움직인 날에는 안도했고, 그렇지 못한 날에는 이유를 찾아 자책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까지 애쓰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마음에 스쳤다.

1. 열심히 살고 있다는 기준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 때
한동안 나에게 열심히 산다는 건 멈추지 않는 상태를 의미했다.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했고, 쉬는 시간조차 다음을 준비하는 시간이어야 마음이 놓였다. 주변을 돌아보면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 속도에서 벗어나면 뒤처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자연스럽게 같은 기준을 적용했다.
하지만 그 기준은 점점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하루가 끝날 때마다 오늘은 충분히 열심히 살았는지 스스로를 평가하게 됐다. 기준에 미치지 못한 날은 괜히 하루 전체가 실패처럼 느껴졌다. 몸이 피곤하다고 느껴질 때조차 더 노력하지 못한 핑계를 찾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열심히 살라는 말은 응원이었지만, 내 안에서는 감시처럼 작동하고 있었다.
그렇게 쌓인 피로는 어느 날 이유 없이 터져 나왔다. 특별히 힘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하기 싫고 모든 게 버겁게 느껴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열심히 산다는 기준이 나를 성장시키기보다는 몰아붙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2. 멈춰 선 자리에서 처음 느낀 안도감
어느 날은 더 이상 속도를 유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일부러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고 하루를 흘려보냈다. 해야 할 일을 줄이고,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미뤘다. 처음에는 불안했다. 이렇게 보내도 되는 건지, 나중에 더 힘들어지는 건 아닐지 계속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묘한 안도감이 찾아왔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가 이렇게 편안할 수 있다는 게 낯설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성과도, 스스로에게 내밀어야 할 결과도 없었다. 그저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느껴졌다.
그날 이후로 알게 됐다. 열심히 살지 않는 시간이 반드시 나태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그 시간 덕분에 내 상태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긴장한 채로 하루를 보내고 있었는지도, 얼마나 스스로에게 엄격했는지도 그제야 보였다.
3. 나에게 맞는 속도로 살아도 된다는 깨달음
열심히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은 단번에 자리 잡지 않았다. 여전히 바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흔들렸고, 나만 느슨해진 건 아닐지 걱정도 됐다. 하지만 예전처럼 무조건 따라가려 하지는 않게 됐다. 대신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지금 이 속도가 나를 무너뜨리지 않는지, 이 정도의 노력이 지금의 나에게 적절한지 말이다.
삶에는 항상 전력 질주만 필요한 건 아니라는 걸 조금씩 받아들이게 됐다. 어떤 시기에는 힘을 내서 달려야 하고, 어떤 시기에는 숨을 고르며 걸어가야 한다. 열심히 살지 않는 선택도 결국은 삶을 오래 유지하기 위한 방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하루를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졌다.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는지가 아니라, 하루를 마치고 나서 얼마나 덜 지쳐 있는지가 중요해졌다. 여전히 노력은 필요하지만, 그 노력이 나를 소모시키지 않도록 조절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열심히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은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를 더 오래 살게 하는 선택에 가깝다. 매일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은 날들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 그 생각 하나로 삶은 조금 덜 무겁고, 훨씬 현실적인 것이 되었다.